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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들뢰즈와 문학 Deleuze et littérature 이라는 주제로 이정우 선생님의 특강을 들었다.
이정우 선생님은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 학위, 미셸 푸코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한국의 철학자이다. 대안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를 창설하신 분이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겸임하고 계시는 유명하신 분이다. 더 궁금하시면 네이버에서 쳐보면 된다.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 질 들뢰즈.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 1. 18. - 1995. 11. 4.) 
 
파리에서 태어나 제8대학에서 교수를 했으며, 가타리나 미셸 푸코 같은 사람들과 깊은 친분을 맺고 영향을 받았다. 철학, 문학, 예술, 특히 영화에 대해 유명한 저작들을 많이 남겼으며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들뢰즈에 대해 내가 처음 접했던 것은 학부 2학년 때 들뢰즈로 개설된 4학년 강의를 들었던 것이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나는 2학년 때 주로 고학년 수업을 들었었다. 허영심 때문이라기보단 주된 이유는 학생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 2학년 수업은 대게 20명 이상이었고 고학년 수업은 6,7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대신에 어렵긴 많이 어려웠다. 그래도 전공은 좋아해서 열심히 했었다.

당시 커리큘럼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에 담긴 들뢰즈 철학 특히 시간을 가지고 다뤘다. 그러나 아주 희미하다. 들뢰즈 철학은 정말로 많이 어려웠다. 특히 2학년이었던 내겐.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마들렌의 '콩브레'와 감각을 통해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동성애와 질투 정도다. 이 수업을 듣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려고 감히 도전했으나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Orz. 글의 선형성에서 벗어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쓴 유명하신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이가 마르셀 푸루스트이니... 그나저나 20대 안에 읽겠다고 선언했던 책꽂이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책의 두께만큼이나; 새삼 묵직한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아무튼 이렇게 내가 아는 들뢰즈는 협소했는데 이정우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들뢰즈 철학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개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엮을 수 있는 힌트도 얻은 것 같다. 
  
들뢰즈와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했기 때문에 문학과 들뢰즈에 관련된 강연을 했는데,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 <문학>이라는 장르를 엄청나게 활용한 철학자이다.

 

1. 철학사적 연구와 존재론의 정립(1953~1969)
<경험주의와 주체성>에서 <의미의 논리> 까지
2. 가타리와의 만남과 실천문학의 전개(1972~1980)
<안티오이디푸스>, <카프카>, <천의 고원>
3. 철학체계의 완성(1983~1994)
<시네마>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 까지


이정우 선생님께서 정리해 주신 들뢰즈의 대략 철학사조의 변화, 정립 그리고 그 과정에서 쓴 저작들이다. 이정우 선생님의 강의 도중 구조주의로 분류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언어학의 소쉬르, 푸코, 맑스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들뢰즈에게 있어 기호라는 것은 상징이자 징후로 어떤 잠재성이 현동화/현실화 되는 사건이다. 기호라는 것은 하나는 던지고 하나는 감추는 것으로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호를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찌됐든 연애 소설인데 사람들이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질투'라는 감정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끝내 심층까지) 더듬어가는 의식의 흐름으로 전개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들뢰즈에게 프루스트는 심층(기억)의 탐색자 못지 않게 표층/표면의 독해자인 셈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일종의 징후학(Symptommatologie)인 것이다. 들뢰즈에게 있어 경계가 무너지는 초월론적인 순간이 주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객체에서 오는 것이다. 사물, 자연 등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계속해서 징후를 던지며 우리는 그러한 기호를 해석해내는 것이다. 이는 하이데거와 어느 정도 유사한데, 이정우 선생님은 이것을 좀 거칠게 말해 하이데거가 시적이면 들뢰즈는 상당히 정치적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러니까 하이데거로 말하면 도래하는 진리의 순간/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프루스트와 기호, 시간을 배웠던 그 수업이 대강 이해되는 것 같았다.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에도 문학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특히 이것은 미셸 투르니에와 타인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미셸 투르니에와 들뢰즈는 불알친구로 그야말로 보기드문 우정을 보여줬다고 이정우 선생님이 말했다. 아무튼 프랑스의 당대 지성작가인 투르니에는 방드르디라는 작품을 쓰는데 이 작품은 기존 승자의 관점으로 씌어진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다르게 뒤집은 작품이다. 즉 로빈슨과 프라이데이의 위치를 바꾸어 "타인없는 세상을 상상"했다고 한다. 여기서 타인에 대한 새로운 들뢰즈의 물음과 관점이 등장한다.


들뢰즈의 관점/물음 : 타인 없는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일까?
- 나의 가능세계로서의 타인
- 지각장의 구조로서의 타인(아프리오리한 타인)
- 시간 속에서 파악되는 가능세계

로뱅송과 방드르디 : 타인 이상/이하 에서 타인으로 


들뢰즈에게 있어 타인은 나의 가능세계로서의 타인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육체를 통해 하나의 삶을 산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무수한 타인들은 다른 가능세계를 만든다. 내가 지금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이 순간 다른 누구는 밥을 먹고 다른 누구는 일을 하는 하면서 나와는 다른 가능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타인은 내가 지각할 수 있는 장소의 구조로서 존재한다. 지하철에 함께 탄 사람들을 내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나 장소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시간 속에서 파악된다. 


또 우리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내가 뱉는 말이나 글 역시 타인을 의식하고 관계를 고려해 행동하는 것이다. 이정우 선생님이 직접 사르트르도 언급하셨지만 타인을 통해 내가 구성되는 것이지 나 자체로 온전한 주체자아로 현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구 칸트 이후 과잉된 주체성의 문제를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를 통해 뒤엎는 것처럼, 인간은 결코 구조에 자유로울 수 없다. 구조 외에도 logic, 무의식이라는 것들이 인간을 지배한다. 이처럼 인간 삶에는 실존주의적 문제와 구조주의적 문제가 공존하는 것이다. 


끝으로 들뢰즈와 소수자 문학(minor literature)을 말해주셨다. 소수자 문학이란 소수의 언어로 쓰여진 문학이 아니라 다수자 언어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수자의 문학인 것이다.
 


소수자의 문학
- 언어가 어떤 식으로든 높은 계수의 탈영토화에 의해 변용된다.
- 모든 것이 정치적이다.
- 모든 것이 집합적인 의미/가치를 띤다.("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언표형위의 집합적 배치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문학은 이런 배치를 표현한다.") 


소수자 문학은 소수자 문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걸 이야기하면서 맑스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 진행이 되었다. 왜 들뢰즈를 강의하시면서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맑스주의를 계속 언급해야만 했는지를 알 것 같다. 들뢰즈의 소수에 대한 관심과 정치성 때문이었다. 들뢰즈가 상당히 정치적인 철학자였다는 것을 이날 이정우 선생님의 강연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는데 그동안 들뢰즈에 대한 나의 앎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들뢰즈에 대해 아는 것은 수업 들었던 기호나 들뢰즈의 시간, 미학 특히 영화를 배우는 사람들은 들뢰즈를 보라는 소리, 다방면을 건드린 학자였다는 것,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매우 어려운 철학자(!)라는 것이었다.


질의문답을 하면서 이정우 선생님이 들뢰즈를 통해 자신이 배운 것은 
생명과 인간을 보둠어주는 부분이 (들뢰즈에게) 존재한다는 것과 들뢰즈는 언어의 틀에 벗어나 리얼한 접촉성을 만들어 준 철학자 라는 것이다고 말하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중에 들뢰즈를 읽어보고 이해해보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앞으로 이정우 선생님은 들뢰즈를 통해 세가지를 조명해 공부를 이어나가실 생각이라 하셨다. 그것은 1. 철학사/사상사에 대한 재고찰. (물론 들뢰즈 역시 서양사람의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여러 의미에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부분이 존재) 2. 생명. 3. 소수자학/문화 이다. 이정우 선생님은 지금 길 출판사를 통해 <세계철학사> 3권의 책을 기획하고 계신다. 그 중 1편인 <지중해세계의 철학>이 발간되었고, 앞으로 1년에 한 권씩 <아시아 세계의 철학>, <근현대세계의 철학>을 내실 거라 하셨다. 나중에 꼭 소장해서 읽어봐야겠다. 소수자에 대해,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 점, 그리고 동양의 사상계를 아우르는 우리만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정말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철학을 배우면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즐거운 건 내가 느끼고 있었던 존재 세계의 '무엇'인가를 철학히 명확한 의미로 짚어내준다는 것이다. 일종의 '어! 나도 이거 느꼈었는데'의 감정인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것이 한계이다. 이기상 선생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듯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 황혼이 다 지고난 무렵에 굽어보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을 무렵에 판단, 진단을 내리는... 언제나 뒤늦게 그러고 있을 뿐이지 명확한 실천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시대를 미리 앞서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언제나 예술가이다. 아무튼 철학을 배우는 기쁨은 언제나 내 삶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들뢰즈 철학을 이정우 선생님을 통해 들으며 든 가장 큰 고민 역시 이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언제나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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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들뢰즈 특강  (0) 2011.07.06
Posted by 엘베
지난 토요일(8일) 처음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2월 호 <호락호락한 인권위? 국제사회의 성난 눈이 지켜본다> 기사를 읽고 서울·경기 읽기모임 첫 토론을 했다. 발제자가 제시한 토론의 문제의식으로는 1. 보편적으로 모든 이에게 주워지는 인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2. 경제논리와 인권이 별개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성. 3. 인권위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할 까닭. 이었다.

이전부터 '인권'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많이 두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사회에 살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인권문제에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몇 권의 책을 찾아보며 머리 속에 혼자 인권 의식을 잡아가는 일종의 '자가개념형성' 단계였다. 그렇다보니 어떻게 보면 인권이란 내게 아직 설익은 개념일 뿐더러, 당위성과 감정이 많이 삽입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세 시간 정도 토론을 하며 내가 느낀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인권 감수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인권문제가 재개되어 있는 특정상황에서 그 상황을 인권관련 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며, 그 상황에서 가능한 행동이 다른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알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식하는 심리과정" 즉, "상황을 인권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는 과정"(국가인권위원회 사이버인권 배움터 참조)이 바로 인권 감수성이다. 

머리 속에 어떤 상황이 떠올랐다. 수년 전 사회적 딜레마와 고민 등에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던 나는 어느 묶어있는 강아지를 예뻐하며 놀아주고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나를 불러 조용하게 불렀다. 계속해서 지켜보았더니 너는 참 동물이며 사람이며 세상에 대한 감수성과 애정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고. 그게 바로 시작인 것이라고. 그런 것이 없다면 누구도 아파할 수도 없고 부당하게 여길 수도 없고 화를 낼 수도 없다는 그런 말이었다. 내겐 그 선배에게 힘든 내색을 비칠 필요도 없었고 고민을 털어놓을 일은 더더욱 없었는데도 내 심정을 알아챈 때 맞은 위안에 얼마나 많은 따스함을 느꼈었는지 모른다. 그때 그 선배가 내게 말했던 것이 바로 '인권감수성'이었던 것 같다.

인권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얼마 전 홍익대학교 청소부 노동자 농성과 총학생회장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분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그를 그리 회자할 권리가 있을까.




 
Posted by 엘베
한국 축제, 물신의 연중행사
[독자 에세이]
[24호] 2010년 09월 03일 (금) 20:28:37 임도연/대학생  info@ilemonde.com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경험을 주고 그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축제’는, 그 기원부터 아주 오래됐다. 인류의 문화만큼 긴 시간을 거쳐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축제는 일탈과 제의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다. J. G. 프레이저의 저작 <황금가지>(The Golden Gough·1922)에는 왕 시해 의식에서 비롯된 환락과 희열의 축제 기원 형태가 담겨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에서 자크 드니는 ‘물신이 된 한여름밤의 꿈, 축제’라는 기사를 통해 점점 물신화하는 프랑스 축제의 위기를 담았다. 프랑스 문화를 기본 바탕으로 하는 <르 디플로>를 읽다보면 때때로 문화적인 차이로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만나게 되는데, 이 기사에서는 ‘문화 예외성 정책’이 그랬다. ‘문화 부문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시장 개방 요구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문화정책’(1)은 한국과는 다른, 예술에 대한 프랑스의 남다른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자크 드니는 경제적인 한계 속에서 축제가 지닌 본연의 성격이 변질돼가는 현실을 지적한다. 기획자들은 축제를 유지할 수 있는 재정 지원자를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잠재적 관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흥행이 보장되는 문화를 생산해낼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대학 축제의 흥행이 각 동아리나 학생들이 보여주는 문화 공연이 아니라, 얼마나 유명한 대형급 아이돌 가수를 불러오는지에서 판가름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 한데 어우러진다’는 글자 그대로 축제인 ‘대동제’(大同際)의 의미는 이미 퇴색한 지 오래다. 지원금이 줄어들수록 축제는 존립 위기를 겪게 된다. 축제는 이렇게 마케팅과 예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다. 축제라는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와 상품가치 효과를 기대하는 지원자가 있는 한 이 문제는 지속적이며 변증법적이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인생이란 아름다움을 음미할 때 비로소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된다”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것은 단지 감각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정신을 한껏 고양시키는 것으로, 우리 삶에서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적 풍요도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질적인 만족도를 결정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생산과 제작, 그리고 창조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특성은 축제에서 잘 드러난다. 축제를 통해 펼쳐지는 그 사회의 문화 향연은 또다시 새로운 문화적 창조를 불러낸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과 프랑스는 문화에 대한 논의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문화적 예외’가 축제 태동의 동의어와 다름없이 여겨지는 프랑스, 반면 우리의 축제는 어떠한가. 한국에서는 1년 365일 중 300일이 훨씬 넘는 날 동안 축제가 벌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반도의 어느 구석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축제의 대부분은 지방자치를 유지하기 위한 소비적이고 의례적인 행사다. 음식, 전통, 음악, 문화, 약재 등을 테마로 한 축제의 기본 콘텐츠는 독특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고, 그마저도 인기 있는 테마를 좇아 자주 변화한다. 이름 있는 축제와 기획에 편중된 예산 구조, 획일화하는 특성 없는 콘텐츠, 오로지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한국 축제에서는 ‘문화 향유층을 넓힌다’는 허울 좋은 의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축제는 물신의 위기에 처한 문화를 말할 것도 없이 애초 물신 구조 위에 형성된 문화인 것이다.

그나마 축제를 통해 예술의 다양성과 인본주의적 가치를 논하는 프랑스는 아름답다. 이들은 축제의 위기 앞에 예술 후원자와의 유대, 민간 후원자 찾기 등 고유한 예술적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대안을 모색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자본과 정치권력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축제를 바라보며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사회,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축제의 예술적·사회적 소명을 잊지 않으려는 사회, 이벤트보다 일상의 문화적 환희를 꿈꾸는 프랑스의 높은 문화 의식이 부러운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영리 문화대안 공간인 ‘쌈지 스페이스’나 다문화와 문화 다양성을 실험하는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예술실험단체 ‘스페이스 리트머스’처럼 의미 있는 시도를 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런데 이런 문화는 아직 우리 사회에선 대부분 ‘마이너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사회 마이너들의 이런 문화적 시도들은 바로 프랑스의 축제가 가진 초기의 목적과 같다. 문화를 통한 사회 통합의 의지인 것이다. 재즈 축제 감독자 르메트르의 “제작과 창작 활동을 자극하고,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음악 활동, 다시 말해 공공서비스와 관련한 임무를 확대하고 있다. 예술적 모험이 필요한 축제는 지속적인 지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에서, 프랑스인이 가지고 있는 축제의 기본 목적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한 사회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은 그 사회의 문화를 알게 하는 척도가 된다. 얼기설기 얽힌 견해를 통해 우리는 그 사회의 전체적인 면모를 어느 정도 관망해볼 수 있다. 우리 축제는 아직 예술적 목적보다는 사회적·경제적 목적이 뚜렷하다. 예술과 문화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예술은 가장 덜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공감시키고 그들을 이끌어내며, 때로 이것은 사회를 통합시키기도 한다. 얼마나 멋진 능력인가. 성숙한 축제문화를 키워낸 프랑스는 위기 앞에서 이제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본질적이고 심도 있는 문화적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천박한 물신 앞에서 버텨볼 문화적 신념이 생겨나도록.

Posted by 엘베


공부와 일들에 쫓기면서 머리 속으로만 수 십번씩 정리해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제서야 한숨 돌리고 편안하게 앉아 글로 쓰려고하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흐른다. 
지난 2010년 10월 9일과 10일 이틀간 상주 낙동강 일대에서 도롱뇽스님 지율스님을 만나뵈었다. 스님을 만나뵙고 내가 품게 된 생각을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한참을 주저하다가,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 선생님이 이끄시는 결사평화연대사람들에게 지율스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가 2003년 천성산 싸움을 시작한 것은요, 그날도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천성산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공사한다고 포크레인 소리가 들리고 산이 파헤쳐지고 있는데 나는 그냥 그렇게 지나치고있던 거예요. 그때 갑자기 눈물이 막 나더라구요. 아 나는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구나. 전처럼 오늘도 모른 척 하면서 다름없이 살아가고있구나. 그게 너무 부끄럽고 슬펐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나는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구나.'
이 말을 듣는데 얼마나 그 누가 부끄럽지 않으며 떳떳할 수 있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계에 관여할 수는 없다. 관심이 있고 그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며 또 뭔가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내가 나서지는 않는다. 그저 나 아닌 누군가를 기다릴 뿐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기마련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해 늘 분노하고 약간의 관심을 기울였지만 정작 나도 늘 모르는 척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율스님은 지나치지 않으려고 하셨다.




지율스님과 만남
다른 곳을 들렀다 오느라 나는 살짝 늦게 합류했는데 도착해보니 스님께서 강 저편의 무언가를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계셨다. 가볍게 합장을 하고나서 조금 쭈뼛쭈뼛 대고 있는데 스님께서 부르셨다. '여기와서 보세요. 저 이상한 푸른 색을 띠고 있는 것 보이죠? 저게 가시박이라는 겁니다' 가시박이 뭐지. 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온 나에게 스님이 처음 들려주신 것은 가시박이라는 식물이었다. 아직 완전히 가을빛으로 뒤바뀌지 않은 초록의 풍경 속에 나는 마치 누군가 일부러 부어놓은 듯한 이질적인 청록의 색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시로 온 몸에 날을 세운 채 강가의 식물들을 다 집어삼키고 야생동물마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그야말로 돌연변이 가시박에 대해 스님은 '녹색이 녹색을 잡아먹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계셨다. 말그대로 '녹색성장'이었다.  

총 3대의 차를 끌고 우리는 지율스님의 인도에 따라 강을 돌아다녔다. 앞차를 쫓아가며 낙동강가를 바라보면서 뜨악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강 구간은 전부 파헤쳐져있었고 그 옆에는 모래들이 쌓여있었다. 강이 몸살을 앓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로소 4대강 공사현장의 단면이 가시화되어 내 시야에 시리게 들어왔다. 차에서 내려 본 공사장 옆에 세워진 구상도에는 대형 축구장 12개를 비롯한 자전거공원, 생태공원, 테니스장들이 그려있었다. 지율스님은 그 옆 주변부 땅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강이 아니예요. 이 주변의 땅이예요. 이곳에 대형 축구장이 12개나 들어온다는건데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대체 얼마나 모으겠다는 소리예요. 4대강 사업은 앞으로 30년 동안 건설업자들이 먹고살 수단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우리는 전체적인 시스템을 봐야해요."

순간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이렇게 우리는 갑자기 아무런 준비없이 사대강 사업의 본질과 마주했다. 말할 수 없는 충격과 혼돈, 그 다음에는 의문이 맴돌았다. 대체 저것을 누가 이용한다는거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오빠랑 계속해서 토론을 했다. 대체 누가 저 12개의 대형축구장을 이용할 것인가. 진입하고 싶어도 더 이상 서울에 갈수가 없어 수도권 내부에 밀집해 사는 사람들이 강 옆의 생태환경이 조성되었다고해서 밀양과 대구, 구미에 내려와 살리가 없다. 개발이 되었다고 40만이었던 구미인구가 갑자기 50만으로 늘어날리도 없다. 뭘까. 정말 4대강이라는 것은. 어둠이 내리고 준설토가 쌓인 강둑을 수없이 헤매면서 내 머리 속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지율스님과의 이야기와 4대강의 본질.
종일 강변을 돌아다닌 후 우리는 민가에 짐을 내리고 주인아주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고소한 묵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쌀쌀해진 상주의 밤하늘에서 우린 하얗게 그어진 은하수를 발견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참 오랜만에 보는 은하수였다. 지율스님께서 은하수와 별자리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보자마자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시며 전체적인 시스템을 보라는 말을 여러번 반복하셨던 지율스님에 대해 그때까지 갖고 있던 나의 인상은 굉장히 냉철하신 분이라는 것이었다. 스님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4대강의 시스템을 파악하고계셨고, 그것은 면밀한 관찰과 분석에서 나온 것일 수밖에 없었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사태를 관망하실 줄 아는 그 통찰적인 자세에 감탄하면서도 사실 그 면에 조금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별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모습과 또 그 이후 새벽까지 이어진 스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것이 모두 그동안의 습지와 강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또 그누구도 쉽게 하기 힘든 강인한 경험에서 형성된 지율스님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가 지율스님에 대해 단 한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참 '소녀' 같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정말 외람된 말이지만 몹시 귀여우신 면도 많이 갖고 계셨다.
우리 일행은 지율스님과 함께 야담(夜談)으로 새벽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는 지율스님에게 재판을 하면서 속기기록을 판사권한으로 없엤다는 말을 5년 동안이나 속고계셨던 이야기, 난데없이 집에서 가출한 것으로 되어있었던 이야기, 단식할 때 이야기, 4대강 함안보 크레인 농성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얻은 지혜, 감동을 어떻게 글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시간 그 공간 안에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무한한 감사함과 기쁨이 솟아났다. 그것은 2010년에 내가 겪었던 경험 중 가장 귀한 순간이었다.




지율스님께선 단 한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천하를 얻기는 쉬워도 단 한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힘들다는 것처럼 스님은 여러 사람이 아닌 한사람만 옆에 있어도 당신과 이 싸움에 힘이 많이 될 것이라 하셨다. 낙동강의 최상단에 자리를 잡고 하루종일 강을 돌아다니시며 사진을 남기시는 지율스님. 스님은 4대강 사업을 막지 못할지라도 전부 남겨두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매일매일 홈페이지에 사진들을 올리는데 사람들은 잘 보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셨지만 그래도 당신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스님께서 하신 가장 기억나는 말씀 중 하나는 바로 나니까 하는거라고. 나는 사람들처럼 가족도 없고 직장도 없고 시간이 남기 때문에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못한다는 말씀이었다. 아주아주 작은 부분에서 동의할 수 있는 말일지라도 그건 결단코 진실이 아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스님은 세속적인 가치와 욕심과는 너무 거리가 먼 분이셨다. 물론 그건 그동안의 행적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반나절간 품었던 의문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일행과 토론을 하면서 그 답을 내릴수 있었다. 4대강사업을 하고나서 세워질 강의 주변부는 분명 유령도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그 부채는 고스란히 후세대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국가는 관심조차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국가라는 관념이 얼마나 무섭게 심어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국가가 하는 일인데 뭔가 생각이 있겠지. 그렇게까지 아무렇게나 진행할리가 있나. 하지만 이 MB정부의 본질은 진실로 '떴다방' 정부였다. 우리들의 생각으로라면 환경과 개발의 문제를 떠나서 4대강은 경제적으로도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사업이지만, 정부와 몇몇 세력들은 당장 자신들의 주머니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던 것이다. 너무너무 두려워졌다.
이날 오후에 구미 해평습지의 준설토가 쌓인 길에서 세 대의 차는 한참을 헤맸다.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고 그 일대를 수없이 헤맸다. 지율스님 말씀대로 강이 있었고, 가로등이 있었고, 농사를 지었던 그 길을, 높게 쌓인 준설토 때문에 빠져나올 길을 찾을수가 없었다. 우리는 우연찮게 사대강의 본질을 상징하고 있는 경험을 한 것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지금도 이 사대강이 갖는 허상 속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우리가 잃어야만 할 것이 얼마나 큰지, 서민들이 믿고 있는 경제적 효과는 결코 그들에게 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무서운 일이지만 실제로 그러고 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우리는 잠에 들었다. 나는 잠들기 전에 혹시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으시겠냐고 물었다. 지율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했잖아요. 어디서든 잘 있어요. 머리만 대면 금방 잠이와서 잘자요. 여러번 단식하고나서 사람들이 걱정이 많지만 신기하게 전 몸이 잘 안아파요. 하고싶은 일 해서 그런가봐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뭔지 모르게 다행인 것 같기도 했다.


경천대와 내성천
다음날 경천대에 가기 전에 잠시 산에 올랐다. 짙게 깔린 안개가 신비하게도 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아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저아래 포크레인 소리는 요란하게도 들려왔다. 지율스님의 말씀에따르면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 위에서 보면 낙동강을 헤엄치고있는 송어들과 강주변 숲에서 뛰노는 노루들까지도 다 보였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처음 오를 땐 몰랐는데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흉물스런 4대강 공사현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율스님의 안내에 따라 결사평화연대 사람들과 함께 낙동강 비경이라는 경천대를 둘러보았다. PD 수첩의 도입부에 나온 나무가 있는 아직까지 건들지 않은(우리가 경천대에 다녀간지 2주만에 지율스님의 트위터로 경천대에 공사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공사도중 유적물로 보이는 것이 발견되어 지율스님의 항의로 잠시 중단된 상태다.) 유일한 곳이었다. 경천대 사진전을 기획하고 계시는 지율스님께서 아직 훼손되지 않은 경천대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두라고 하셨다. "전부 여러분의 가슴과 카메라에 담아두세요. 경천대의 바위, 나무, 풀들 하나하나 까지도" 스님 말씀대로 나무껍질과 돌맹이까지 사진기에 담으면서 나는 또다시 가슴이 아려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강가의 모래를 바라보며 우리 일행이었던 르몽드디플로마티끄 편집장님게 나는 말했다. "정말 너무 끔찍해요. 어떻게 이럴수가 있죠? 어떻게 자신들의 천박한 이익을 위해 감히 인간이 환경을 건드리고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수가 있죠?" 편집장님은 살짝 웃으며 내게 대답했다. "사실 4대강 사업 이전에도 늘 인간들은 이래왔어. 단지 4대강은 그것이 가시화된 것 뿐이야. 전국에서 한순간에 너무나도 스펙터클하게"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4대강 사업이 갖는 상징성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되새겼다.

생명평화결사사람들과 낙동강의 모래강변에서 100배를 했다. 부디 이 끔찍한 일들이 멈출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한번 한번 절을 했다. 생명평화결사 사람들은 벌써 며칠째 국토를 걸어서 순례해왔다고 했다. 이 모임에는 나이 어린 아이들과 우리나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들도 있었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이신 황대권 선생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이들에게 간식과 점심도 얻어먹고 인사를 나누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스님이 우리를 데려가주신 곳은 내성천이었다. 내성천은 아직 살아있는 강인데 정말 눈물나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노래를 들려주면 따라오는 물고기들, 유속에 빠르게 흘러가는 모래의 모습들이 투명한 물결 속으로 다 비쳤다. 지율스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맨발로 자연의 속살을 밟았다. 강물과 모래는 우리들의 지친 발바닥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이틀간 종일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고 있는 낙동강만 보면서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일정의 거의 마지막으로 경북 예천의 뿅뿅다리를 갔다. 회룡표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다리의 끄트머리는 끊겨있었다. 누군가가 서툴게 통조림통으로 만들어놓은 급조된 다리가 있었다. 지율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남자들과 여자들의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저렇게 다리가 끊겨있을 때 남자들은 다리를 만들고 여자들은 양말을 벗어요. 여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환경과 친화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예로부터 여자들을 땅의 여신으로 비유했지요."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대표적으로 기독교의 남신사상에 묻혀 사라졌지만 본디 인류 역사에서 태초의 신의 모습은 대부분 대지모여신들이었다. 
맛있는 도토리묵·파전과 함께 막걸리를 먹고 회룡포에서 나오는데 우습게도 뿅뿅다리의 끊어진 부분엔 몇시간 전의 어설픈 통조림통 대신 플라스틱 맥주 박스로 조금 더 견고하고 그럴싸한 다리가 건설되어 있었다. 아마도 남자들이 만들어놓았으리라.




"국민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어요. 모른 척하던 교수들이 나서서 잘못되었다고 333프로젝트를 만들고 힘을 보태고 있어요. 다 반대하는데 이명박 혼자 한다고 하는거예요.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요."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보니 상주에는 자전거 박물관이 있었다. 웃음이 났다. 내게 자전거박물관은 강을 파헤치고 난 후에 그곳에 생태공원을 세우겠다는, 멀쩡한 자연을 시멘트로 뒤덮고 자전거를 탈 수있게 만들어주겠다는 정부의 역설적인 뜻과 묘하게 병치되어 보였다.

일요일. 서울에 다시 올라가야했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우리는 지율스님과 함께했다. 마지막으로 경천대 근처 스님의 거처에 갔다. 우리 일행은 몹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님의 거처엔 문풍지조차 제대로 발라져 있지 않았다. "나는 편해요. 따뜻하고 이 집도 황송합니다. 걱정마세요. 잠만 자는 곳이예요.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여러분이 너무 걱정하실 것 같아 내가 마음이 쓰이네요." 아쉬웠다. 지율스님과 함께 한 이틀이 행복했고 앞으로의 4대강과 스님의 행보가 염려스러웠다. 우리는 곧 30명을 꾸려 다시 내려오면서 지율스님 댁의 문풍지를 발라드리기로 다짐하였다. 



어제 나는 잠시 잠에 들었다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꿈 속에서 나는 아빠, 남동생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TV 화면 속엔 4대강을 파헤치는 포크레인 장면이 나왔다. 나는 불현듯 끔찍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어 아빠와 남동생의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또 이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고 있는 내가 부끄럽고 소름이 끼쳤다. 꿈에 깨어 두 뺨을 바로 닦아내었다. 그제서야 지금 이 순간에도 강 앞에 서계실 지율스님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 싶은 생각이 깊게 밀려왔다. 다시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스님이 원하는 한 사람이 못 되어 드린다. 어쩌면 나는 모르는 척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할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관심을 놓지않고, 한번 더 강을 찾아가야겠다. 제발 우리의 강을... 초록의 공명을...




지율스님의 홈페이지 : http://www.chorok.org/ 에 들어가면 스님이 올려주시는 사진과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지율스님의 트위터 초록의 공명(@chorokorg)을 팔로잉하면 스님이 올려주시는 4대강 사업현장을 볼 수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안영춘 편집장님의 관련 글 : http://hook.hani.co.kr/blog/archives/14742
333프로젝트 : http://cafe.daum.net/go4rivers 30명 이상 모이면 무료로 버스대절이 되고 4대강 현장을 답사할 수 있다.




Posted by 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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